기다리면 반드시 돌아와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얼마 전부터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헬스장 매니저는 가끔 반려견을 데려온다.
갈색털의 3살 푸들인데 참 얌전한 녀석이다.
운동하다 보면 매니저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오늘 운동을 마치고 매니저와 짧은 얘기를 했다.
아침에 나오는 길에 강아지가 현관을 탈출해 아파트 8층부터 20층까지 뛰어갔다고 했다.
얌전하고 착하지만 혹시 몰라 잡으러 뛰었다고 한다.
원치 않는 운동이었음을 얘기했다.
개를 키우다 보면 누구나 몇 차례 겪는 일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나와 살고 있는 개는 9살 진돗개, 이름은 주도이다.
덩치도 한 덩치라 목줄이 풀려 날뛴다면 나는 결코 잡을 수 없다.
주도 훈련을 받던 꼬꼬마 시절 8년 전쯤 캘리포니아에서의 일이다.
주도를 뒷좌석에 태우고 이동을 하던 때였다.
차도 밀리고 창밖이라도 보라고 창문을 1/3쯤 열어 두었다.
차가 잠깐 멈췄을 때 주도가 창문을 뛰어 넘어갔다.
서있는 차들 사이로 하얀 백구가 미친 듯이 날뛰어 다녔다.
차들은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는 허겁지겁 차를 갓길로 세우고 주도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속 타는 내 마음도 모르는 듯 보란 듯이 저 멀리 뛰어가버렸다.
허망하게 주도의 뒤태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때, 백발의 백인 노부부가 차를 세우고 나를 불렀다.
금방 돌아올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사실,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도는 갓길 쪽으로 다시 나에게 뛰어오기 시작했다.
반가운 마음과 치밀어 오르는 화가 동시에 올라왔다.
정신이 쏙 빠진 사이 허겁지겁 주도를 차에 태웠다.
그리고 돌아온 주도를 보니 눌려있던 화가 아니, 분노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분노가 폭발했고 주도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움찔한 주도는 내 눈치 한번 보고는 거친 숨과 혀를 길게 빼고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강심장이라 자부했던 나도 갑자기 일어난 일에 당황했고, 두려웠고, 분노했다.
그러나 결국 그 노부부의 말처럼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주도에게 주었던 애정을 믿는다면 그냥 기다리면 되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준 애정도 믿지 못한 채 주도가 도망가 버릴까 걱정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개의 본능을 내가 잊어버리고 차에 부딪칠까 걱정했는지도 모른다.
심호흡 한번 하고, 나와 주도를 믿으면 되었다.
잠깐의 해프닝이었지만 큰 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