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아티스트

20대 취업전선에 선 3D 라이팅 아티스트

사업하는 아티스트 2023. 2. 19. 16:59
당신은 당신일 뿐이야.
어떤 일을 하며 살겠다고 결정하는 건 당장 죽을지 살지를 결정하는 건 아니잖아
그런데 그걸 왜 그렇게 어려워하지?

'네 멋대로 행복하라' 중에서

23살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3D 애니메이션은 글로 논하는 학문이 아니라 실력이 좋으면 취업이 가능하다.

실력은 포트폴리오에 드러난다.

 

나와 동기들은 밤낮없이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다.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듣기도 했다.

이름 있는 대학교의 졸업장을 원하시는 부모님과의 대립.

아티스트는 돈을 못 번다는 흉흉한 말들.

특출 난 스킬이 없으면 취업이 힘들다는 걱정들.

그래서인지 휴학이나 자퇴, 편입준비 등의 이유로 빈자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취업을 해서 하고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싶었다.

 

지칠 때마다 나타나 당근과 채찍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게 해 주시는 교수님이 계셨다.

늦은 밤에도 컴퓨터실로 순찰을 다니셨다.

밥도 술도 잘 사주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분은 3D를 전혀 하실 줄 모르셨다.

그림을 오래 그리셔서 보는 눈이 정확했다.

당연히 모두가 그분은 3D까지 잘하신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림 실력은 엄청났고, 무엇보다 포트폴리오를 위한 조언들이 대단했다.

 

나는 유일한 3D 라이팅 전공자였다.

동기들과는 다르게 혼자 공부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동기들의 파트는 튀업에 성공한 선배들이 많아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내가 문제였다.

전공자가 없으니 포트폴리오 방향조차 찾을 수 없었다.

 

내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교수님과 종종 대화를 나누었다.

그분은 본인의 인맥과 제자들을 총 동원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다 할 작업물이 준비되지 않았고, 취업의 문은 높아도 너무 높았다.

하필 3D 애니메이션 라이팅 파트가 있는 회사도 몇 없었고, 무엇보다 최소 3년 이상의 경력자만 뽑았다.

신입을 뽑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취업에 성공한 졸업생들은 나에게 많이 뽑는 파트로 바꾸어 준비해 보기를 권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이것저것 다 만들어 봤다.

3D 라이팅 보다 다른 파트에 대해 공부하고 연습했다.

실력이 전혀 늘지 않았다.

 

스스로 흥미도 잃고 재미도 잃었다.

취업은 해야 했기에 열심히는 했다.

그러다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3D 상으로 만든 물건들의 재질이 빛을 주는 순간 전혀 다른 물질처럼 보였다.

동기들의 포트폴리오에서 라이팅 파트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기에 나처럼 민감하지 않았다.

나는 빛과 재질에 대해 더 공부해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동기들의 포트폴리오에 라이팅을 넣어주고 재질을 만져보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만족 이었다.

 

동기들의 멋진 실력은 포트폴리오에 드러났다.

거기에 나의 라이팅과 손 본 재질로 더욱 풍성하고 멋져졌다.

나도 동기도 대만족 그 자체였다.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라이팅을 넣어달라는 문의가 들어왔다,

대가로 밥과 술을 얻었다.

 

단기간에 다양한 방법의 라이팅을 연습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동기들은 좋은 회사의 인턴으로 채용되어 하나 둘 떠났다.

남은 사람들도 인턴직에 목숨걸 듯 최선을 다했다.

먼저 인턴으로 뽑혀 나간 동기들이 찾아와 술을 사줬다.

용기와 격려를 가득 담은 술이었다.

 

가끔 교수님을 통한 졸업생 선배들도 찾아왔다.

나는 여전히 술자리에서 쾌활한 성격의 일인자였다.

자연스레 실무에서 일하는 졸업생들과 교류가 생겼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나에게 포트폴리오를 보여달라고 했다.

동기들의 작품에 넣었던 라이팅부터 보여 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줬다.

 

며칠 후 그 졸업생은 본인이 다니는 회사 팀장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지난번 보여준 포트폴리오를 다시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취업이 되었다.

 

회사 규모는 작은 신생회사였지만 라이팅 파트가 있었다.

완전 신입이 나의 사수는 3D 애니메이션 라이팅 경력만 10년 차의 실장이었다.

 

3D 애니메이션학과 최초의 라이팅 전공자이자 동기들 중 인턴이 아닌 정식직원으로 채용된 첫 번째 학생이 되었다.

 

잘 산다는 건 스스로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하고 싶다고 규정할 수 있는 거야.
내 타이틀은 내가 만드는 거야.
우리 아버지가 의사야 변호사야 말하는 대신 난 영화를 만들고 싶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중요해.
어떤 일을 하며 살겠다고 마음먹는 건 당장 죽을지 살지를 결정하는 건 아니잖아.
그런데 그걸 왜 그렇게 어려워하지?

로이드 맥닐, '네 멋대로 행복하라' 중에서